명진스님 입적 – 제주 바다에서 76세로 생을 마치다
22일 아침, 불교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봉은사 전 주지를 지낸 명진스님이 제주도 서귀포 앞바다에서 프리다이빙 도중 사고를 당해 끝내 돌아오지 못하셨습니다. 세수 76세, 법랍 52년. 솔직히 이 소식을 접하고 잠깐 멍했거든요. 그 활기차고 거침없는 분이 바다에서 이렇게 떠나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오전 9시 38분, 제주 서귀포시 하예동 하예포구 인근 해상에서 물에 떠 있는 상태로 발견된 스님은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오전 10시 28분께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구조 당시 마스크, 스노클, 다이빙수트, 핀 등 장비를 모두 착용하고 있었다는 사실로 보아 해경은 프리다이빙 연습 중 사고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스님의 유발상좌 유병문 씨는 "가까운 해안에서 발견되신 걸 보면 깊은 바다에서 다이빙하신 게 아니라 바다 수영을 하시다 심정지가 온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범죄 혐의점이 없고 외상도 없어서 부검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하는데요.
명진스님 입적 소식에 각계각층 애도 이어져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불교계는 물론 정치권, 시민사회 전반에서 조문 메시지가 쏟아졌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페이스북을 통해 "대한민국 불교계의 큰 어른을 떠나보내게 된 슬픔을 온 국민과 함께 나눈다"며 깊은 추모의 뜻을 전했습니다.
조계종 선명상위원장 금강스님은 페이스북에 20여 일 전 스님과 나눈 이야기를 올리면서 "무산소 바다 20m를 말씀하시더니 기어코 바다에서 입적하셨다"고 애도했는데요. 근데 이 문장이 왠지 모르게 마음을 세게 붙잡더라고요. 수행자로서 두려움을 직면하고 싶다던 그 의지가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진 거잖아요.

백기완노나메기재단도 입장문을 통해 70~80년대 민주화운동부터 이어온 인연을 밝히며, 스님이 사회적 약자 보호와 비정규직·산업재해 문제 해결을 위해 최근까지도 함께했다고 전했습니다. 정말 한결같은 분이셨군요.
명진스님은 어떤 분이셨나 – 이력과 생애
195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1969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한 명진스님은 1974년 사미계를 받고 본격적인 수행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베트남전 참전 이력도 있는 분으로, 삶의 굴곡이 정말 만만치 않았던 분이에요.
| 1950년 | 충남 당진 출생 |
| 1969년 |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 |
| 1974년 | 사미계 수지 |
| 1998~2002년 | 조계종 중앙종회 부의장 |
| 2006~2010년 | 서울 봉은사 주지 |
| 2017년 | 조계종으로부터 승적 박탈 |
| 2026년 초 | 승적 복원 소송 마무리 (1·2심 승소) |
| 2026년 8월 22일 | 제주 서귀포 해상에서 입적, 세수 76세 |
위 표에서 보듯이 명진스님의 삶은 단순한 수행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조계종 집행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다 2017년 승적까지 박탈당하는 큰 시련을 겪었지만, 굴하지 않고 법적 다툼을 이어가 1·2심 모두 승소하셨습니다. 올해 초 조계종과 스님 양측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사실상 명예를 되찾으신 직후 이런 일이 생긴 거라 더욱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70대에 프리다이빙을 시작한 이유 – 두려움을 마주하려 했던 수행자
사실 이 부분이 저는 제일 인상 깊었는데요. 스님은 세수 일흔이 넘은 나이에 프리다이빙에 입문하셨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5월부터 12월까지 제주 남선사에 머물며 훈련을 해왔다고 해요.
남선사 주지 도정스님은 이렇게 전했습니다. "스님이 3분 이상 숨을 참아야 하는 수심 20m 잠수에 도전하시면서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하셨다"고요. 이어서 "수행자로서 두려움의 근원을 찾아 직면하고 극복해 깨달음에 이르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전했습니다.
그냥 취미로 다이빙을 하신 게 아니라, 수행의 연장선이었던 거더라고요. 바다 속 20m 아래서 숨을 멈추고 자기 자신의 두려움과 마주하는 것 — 그게 스님에게는 또 다른 수행이었던 셈이에요. 어떻게 보면 바다에서 입적하신 것도 우연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명진스님 입적 이후 장례 일정은?
장례는 종교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집니다. 제주 서귀포의료원에 안치됐던 법구는 23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운구됐는데요. 스님이 2006~2010년 주지를 지낸 봉은사 선불당에 빈소가 마련돼 23일 오후부터 조문객을 받았습니다.
| 8월 23일 | 봉은사 선불당 빈소 마련, 조문 시작 |
| 8월 25일 오전 10시 | 영결식 엄수 |
| 영결식 후 | 법주사(출가 본사, 조계종 제5교구)에서 다비식 |
위 표를 보면 장례 일정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장례위원회에는 스님이 생전 교류한 타 종교계, 문화예술계, 정계 인사들도 대거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만큼 명진스님의 영향력이 불교계를 훨씬 넘어 사회 전반에 걸쳐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명진스님이 남긴 것 – 사회운동과 신념
명진스님은 단순한 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이명박 정권 시절 국정원의 불법 민간인 사찰을 당한 사실도 알려져 있고, 평생 사회적 약자 편에 섰던 분이에요. 비정규직 문제, 산업재해 문제에도 목소리를 높이셨는데요.
승적 박탈이라는 거대한 시련 앞에서도 꺾이지 않고 소송을 통해 법적으로 정당성을 되찾으신 것도 굉장히 인상 깊은 부분입니다. 사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거든요. 결국 올해 초 소송이 마무리되고 명예를 회복하신 직후에 이렇게 떠나셨으니, 불교계 안팎의 상실감이 더 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명진스님 입적은 단순히 한 종교인의 죽음이 아닙니다. 시대와 함께 싸우고, 수행과 실천을 겸한 한 인간의 삶이 마무리된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